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일시 : 2003.8.16(토)

코스 : 정릉 - 보국문 - 대동문 - 동장대 - 용암문 - 위문 - 백운대 - 우이동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아직 읽지는 못 했지만
 남자와 여자는 성적으로나 행동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
 부자간, 모녀간에는 어릴적 경험들을 토대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부녀간, 모자간 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한 모자간 보다는 부녀간이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을거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킹슬리 워드의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도 읽으며
 여자 아이들에 대하여 내가 어렸을적 몰랐던 점을 깨우치려 노력해본다.
 또한 제프리 노먼의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을 보면
 나처럼 두 딸을 키우는 지은이의 자상한 면을 살펴볼 수 있는데,
 딸아이와 50세 생일기념으로 4000m의 그랜드 티턴을 오르고 7000m의 아콩카과를 오르며
 등반에 관한 사실적 이야기보다는 부녀간의 정서적인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이 책들은 딸을 가진 부모뿐만아니라 딸이 없는 부모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큰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이할 때 북한산 야간산행을 가기로 약속을 하여
 단둘이 산행하기 보다 지인들을 몇몇 초대하여 동행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막상 오늘 산행날이 되어 윤지와 단둘이 산행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딸아이와 더욱 가까와지고 아빠의 마음을 전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비록 제프리 노먼처럼 사천, 칠천의 고산은 아니더라도
 836m의 백운대를 오르며 우리 부녀도 충분한 사랑을 느꼈다.
 어제는 윤지의 열번째 생일이라 '생일 10주년 기념산행'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듯 싶다.
 윤지와 기념산행은 백일때부터 시작되었는데
 4개월지나 백일기념으로 북한산을 올라 첫눈을 맞이하고
 9개월지나서는 돌기념으로 소백산에 올라 철쭉을 만끽했다.

 야간산행이다 보니 잠이 많은 윤지에게 무리일 것 같아서
 미리 전화하여 낮잠을 자두도록 하고 저녁식사후 두어시간 또 자도록 했다.
 9시 반이 다되어 잠을 깨우니 아이는 비몽사몽이다.
 겨우 잠을 쫓아 영등포에서 정릉 종점인 3번버스에 오르니 다시 꿈나라로 향한다.
 11시경 종점에서 내려 정릉매표소로 향하는데 쌀쌀한 기운이 감돌고
 매표소를 지나자 상가 불빛도 사라져 우리는 랜턴을 착용하는데
 약수물을 받아오는 주민 세분이 내려가신다.
 정릉쪽은 보국문까지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지루한면이 있다.
 첫번째 쉼터에서 쉬며 준비한 김밥을 먹는데 인적도 없어 무섭기도 하고 
 졸음이 오는지 아이는 벌써 내려가자고 보채기 시작한다.
 이제 시작인데 그러면 오늘 산행은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아내에게 차를 가지고 와야할지 모른다는 전화를 해놓았다.
 두번째 쉼터에서도 윤지의 마음은 불변이다.
 하는수 없이 '보국문까지 가서 엄마가 오기쉬운 곳으로 
 하산을 하자꾸나'하고 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보국문에 이르니 옆 능선에서 인기척도 들리고 
 시내 야경에 반하고 잠도 달아난 윤지의 마음이 돌아섰다.
 또한 보국문에서 가는 능선길은 북한산성을 따라 완만하게 되있어
 여태까지 오르기만 했던 등산로보다는 편히 갈 수 있었다.
 '등산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올라 정상에 서면
 힘들땐 볼 수 없었던 좋은 경치도 보고 수월한 길을 가듯
 인생도 등산과 별반 차이가 없단다'하니 쉽게 수긍하며 끄덕인다.
 그런데 정상까지는 안가고 위문까지만 가겠다고 한다.
 그러기로 하고 북한산성길을 여유롭게 걸어가니 능선위로 부는
 상쾌한 바람이 조금씩 한기를 느끼게도 한다.
 윤지에게 내자켓을 입혀주고 대동문을 지나며 
 왕거미도 보고 멋쟁이딱정벌레도 보았는데 
 채집하려했던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동장대 앞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하는데 30여명의 무리가 인사를 하며 지나가자
 윤지는 답인사를 하며 더욱 용기를 얻는다.

 이제는 무인산장이 된 북한산장에서 용암샘터의 약수를 마시고,
 '아빠가 십수년전에 이곳에서 야영도하고 교육도 받고 나중에는 교육도 했단다.'라고 
 설명해주고 산장이 무서웠는지 안들어 오려고 하는 윤지의 손을 잡고 둘러보니 
 벽과 문을 헐어버린 산장이 그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용암문을 지나 위문으로 가는 길은 아이에게 잠깐씩 험난한 길이 나오는데
 내가 양손에 스틱을 짚고 가는지라 도움을 주기 어려워 다시 한번 조심할 것을
 주지시키고 바짝 붙어가는데 속도는 좀 더디지만 제법 잘간다.
 새벽 세시경 위문에 도착하자 내려가자는 윤지를 한번 더 설득해야 했다.
 보국문 오를때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고 정상에서의 조망과 기쁨, 성취감을...

 결국 우리는 함께 백운대를 오른다. 
 기념촬영도 하고 일출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거센 바람에 추위와 피곤에 지쳐 졸린 윤지를 집에 데려와 재워야 할 판이다.
 용암문에서 백운대까지는 인적이 없었는데 백운산장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일출을 보려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백운산장에서 남은 김밥을 처리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인수산장이 다와가는데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인수산장 주변의 텐트들을 보며 하루재를 넘어가는데 윤지도 지쳤는지
 북한산장에서 '잠깐 자고갈까?'해도 빨리 가자더니 조금 자고가면 안되냐고 한다.
 하루재에서 조금만 가면 우이산장을 지나 바로 앞이 도선사다.
 다 왔느니 집에서 편히 자기로 하고 서둘러 하산하는데 나도 지쳤는지
 가깝던 길이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던지...

 도선사 입구에 도착하니 아침 6시. 
 버스 종점까지 가려면 아스팔트길을 또 몇십분 동안 내려가야하기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도선사앞에서 택시를 잡아탄다.
 우이동에서 버스를 타자 윤지는 바로 꿈나라로 향하고 전철을 갈아타도 ZZZZZ
 소감을 물었더니 힘들지만 즐거웠다며 다음에 또 가기로 한다.
 다음 산행때는 윤정이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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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문에 도착
보국문에서 정릉방향
산성에서 본 서울야경
야경을 배경삼아
왕거미와 달
대동문과 달
멋쟁이딱정벌레
구파발방향
백운대(정상)
이은상님의 통일서원
백운산장아래서 본 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