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이기에 충분한 여름 휴가!
연중에 한번있는 여름 휴가! 회색빛 콘크리트의 획일적인 행렬속에서 도시의 인간 부품으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를 나는, 과감히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치마폭에 안기우듯,푸르른 대자연의 품에
모든 것을 맡기고 만다.
그것은 그리 길다고만 볼수없는 생을 살아가는데에 촉매로서 온갖 활동의 활력소가 된다.
다시 가고픈 지리 능선 종주와 오대-설악계곡 종주의 갈림길에서 몇번을 망설이다가,
드디어 강릉행 고속버스에 우리 총각 사우들은 몸을 싣고, 꼬박 여덟시간을 오로지 목적지를 향한 일념으로
몸을 옮겨 다녔다.
도시에서 벗어나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모든 산천들이 도시인들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만든다.
월정사에 도달하여 잠시 부처님의 고행을 상상해보며, 앞으로의 오대-설악 종주에 대해
다시한번 마음을 굳게 다짐한다.
상원사를 거쳐, 아직도 고집스럽게 눈을 뜨지않은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듯한
오대산의 비로봉에 올라 여유있게 주위를 둘러보면 세속의 잡음은 아득하게 멀리 사라지고, 머리속에
잔류했던 상념들을 창공위에 띄워 보내며, 어린왕자가 되어 심산과 서로를 길들이면서 아득한 사색에
파묻혀 결국 자연과 함께 동화되고 만다.
살갖에서는 마를사이 없이 흐르는 땀방울, 그것을 시원스레
날려버리는 상쾌한 바람, 정상 딛고 세진을 굽어보는 그 쾌감!
그런 노력을 들인 만큼의 댓가라기 보다는 자신의 승리라는 극기의 성취감을 만끽한다.
예정대로 우리들은 상왕봉을 거쳐 북대사에서 자리를 잡았다.
비바람은 낯설은 객을 몰아치고, 텐트밑으로 기어드는 빗물은 단꿈을 깨운다.
잠을 설치고 비가 갠후에 우리는 다음의 목적지를 향하여 더욱 박차를 가해
나그네의 발길은 동대산-노인봉을 여우빗속에 강행군...
기기묘묘한 괴석과 순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물의 춤을 보면서 이른바 청학동 소금강을 밟는다.
이곳에서 남은 모든 일정을 보내고 싶은 유혹과 충동을 받지만,
수려한 소금강 계곡의 경관을 뒤로한채, 아쉽게도 발길을 돌린다.
왜냐하면, 그에 못지않은 또하나의 금강이라 일컬을 만한, 설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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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속초행 버스를 잡아타고, 피로한 몸을 맡긴채 차창밖을 내다보니 또 빗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천불동 계곡!
천개의 불상들이 진좌하고 있는, 좌우에서 호위하듯, 화채능선과 공룡능선, 폭포와 소, 담등은 가이
절경이라 할, 수식어로는 절대 부족한 계곡미의 극치를 이룬다.
발병이난 왼쪽다리를 이끌고 기진맥진하여 겨우 희운각에 이르렀을때에는 땅거미가 온산을
삼켜버리고 있었다.
자칭 산악인임에 도취되어 바라보는 하늘위에 먹칠을 더해갈수록 초롱한 별빛들만이
반짝이고, 야인은 우주의 가슴속으로 안기운다.
태고의 고요속에 시간은 멈추인 듯 한데 흐르는 계곡의 산수만이 질투심으로 정적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동트기 전에 행여 일출을 볼수있는 기회를 얻기위해 대청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소청봉에 도달하니 서서히 여명은 밝아오고 온누리는 망망대해...
운무에 뒤덮혀있는 설악은 끝없는 바다, 그위로 삐죽이 나온 봉우리들은 영락없는 바다위의 섬이었다.
태양이 머리를 살며시 내밀때, 그 바다는 서서이 춤을 추더니 파도와 같이 일렁인다.
대청에 이르렀을때 이미 태양은 떠올랐고, 운해는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며 천만지상을 이룬다.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를 향해 내려오는 구곡담-수렴동 계곡은 조물주의 걸작이라 할, '감탄사! 감탄사!' 의
연속이었다. 가라앉힐 수 없는 마음으로 계곡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여장을 풀고 지친 몸들을 뉘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개운한 기분으로 용대리를 향하여 하산을 서둘렀다.
산행의 백미는 사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자아의 재발견을
할수있고 자연과 합치될 수 있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속 가득 기쁨이 충만해지고, 산정이 절로 느껴지는데
어찌 그를 사랑하지 않으리... (산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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