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전 수 전

월출산, 두륜산, 지리산

 

월출산으로
기다리던 휴가가 다시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휴가를 알차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세워 100% 성공하기를 기대하며 영등포역 플랫포옴을 떠났다.
월출산
피서 기간에 토요일이 겹쳐서 인지 이미 좌석은 오래전에 매진이 되었고, 밤새 뜬 눈으로 나주에 도착하였다. 새벽에 나주 터미널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였다가 영암행 첫차에 몸을 실었다. 영산포에 도착 할 즈음 허리 쌕을 놓고 탄 것을 알았다. 다시 나주 터미널로 택시를 달렸는데, 어떤 친구가 그것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는 카메라와 카세트가 들어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식사라도 대접하려 했으나 서로 여의치 않아 섭섭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월출산 천황봉
영암에서 천황사행 첫차에 몸을 옮겼다. 곧 버스는 천황사 입구에 다달았고, 승객들은 모두 배낭을 짊어진 젊은 남녀 였다.
잠깐 동안 오르다가 계곡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약 한시간 정도 오르니 능선에 올라 설 수가 있었다.
정상까지는 대구, 예천등 경상도 아가씨 세명과 동행을 하고, 천황봉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위와 배틀굴

약 두시간 반을 걸으니 도갑재에 이르렀다.
운무에 휘감겨 있는 월출산은 능선도 경관이거니와 기암괴석이 많고, 호젓하고 조용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명산이다. 도갑사를 향해 하산 도중 계곡 합수점에서 중식을 하고, 도선국사비를 지나 도갑사에 이르니 같은 코스를 밟았던, 서울에서 온 가족 산행팀 중 두사람이 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내일 산행 할 두륜산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대흥사 입구에 내렸다.
월출산
첫 밤을 그 곳에서 야영을 했다. 앞으로 남은 두륜, 지리산 산행을 생각하며, 시계 추와 같았던 서울에서의 생활을 계곡의 물소리에 흘려 보내며 잠을 청했다.


두륜산에서
매표소에 배낭을 맡겨 놓은 채, 카메라와 간식 만을 들고 출발 하였다.
두륜산
잠시후 서산대사의 유물등을 전시한 기념관과 표충사, 장군수등이 나타났다. 그 옆을 돌아 오솔길로 들어서자 관광객들은 전혀 볼 수 없었고, 그 곳 해남 출신 학생을 한명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대흥사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며 야간 대학에 다닌다던 그는 '고향 답사'라는 레포트를 제출 하려고 왔다며 굳이 캔맥주를 권했다. 진불암

잠시후 진불암이 나타났고 한시간 후에 구름다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기념 촬영을 마치고 헬기장을 향하여 내려갔다.
구름다리(운교)
나는 홀로 정상으로 향하였다. 잠깐후 정상에 이를 즈음 그들은 헬기장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헬기장
남쪽에는 바다위에 섬들이 널려있고, 땅 위에는 논, 밭, 농가들이 아름답다. 새 소리, 벌레 소리, 그 외에 두륜봉 위에 나를 제외하면 산 뿐이다.
두륜봉에서 본 남해바다

북암 방면으로 하산을 하니 석탑, 천년수등을 볼 수 있었다.
석탑
서둘러 가다 보니 그 산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기념 촬영을 해주고 배낭을 메고 단숨에 매표소까지 달려 내려와 행락객들이 놀고있는 계곡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두륜봉
다시 버스를 타고 해남으로 갔다.부산행 시외버스에 올라타고 보성에서 하차하여 역으로 향했다. 진주행 밤열차를 예매 해놓고 대합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이곳에서는 백반을 주문하면 반찬이 한상 가득 나온다. 전라도 방면은 그런 곳이 많다.


지리산의 비구니
새벽 한시 반에 열차에 올랐다. 좌석은 없고 진주까지 뜬 눈으로 지새우며, 지리한 새벽을 보냈다. 네시 반경 플랫포옴을 빠져 나오며, 옆에 함께 서서 오다가 내린 아가씨가 말을 건네왔다. 광장에서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터미널을 향해 가다가 촉석루에 들렀다. 아직은 해가 떠오르지 않아 배경 사진을 찍었지만 허사였다. 남강에는 잔뜩 새벽 안개가 끼었고, 하늘에는 별들이 빛났다.
터미널에서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대원사행 첫 차에 몸을 실었는데 큰 버스안에 승객은 모두 네명이었다.
여덟시에 매표소에 도착, 매표원에게 '첫 등산객이냐' 하니 '그렇다' 하며, 무료 입장을 시켜준다.
대원사

천왕봉 까지는 20여km, 정말 길고도 지리한 계곡이다.
무재치기 폭포
비구니 스님들 만이 입적하고 있는 대원사를 지나 무재치기 폭포를 지나 오후 세시가 넘어 중식을 하니 너무 피곤했다. 치밭목 산장에서 약간 옆으로 빠져 나가야 식수가 있는데, 그 곳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면도 취하지 못하고 국수 하나로 이 곳까지 버티려니 산행이 무척 늦어졌다. 중식을 마치자 약간 힘이 솟았다.
약 두시간 반을 오르니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하였다.

인파들로 발조차 디딜 틈이 없었다.
지난해 팔월에는 빗속에 볼 수 없었던 장관이 한 눈에 나타난다. 동쪽으로는 웅석봉을 향한 능선, 서쪽으로는 노고단을 향한 능선과 봉우리가 연이어져 아득 하였다.
천왕봉
어떤 비구니 스님께서 염불을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산에서 온 친구들과 헤어져 장터목으로 향했다. 고사목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겨울에 와서 눈꽃이 만발한 경관을 보면 그 또한 장관이겠다. 장터목에 도착하여 야영을 하였다.
이곳 저곳에서 합창으로 부르는 가요의 메들리, 폭죽 터트리는 소리,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소음 공해에 시달렸으나, 피곤에 지친 몸은 이내 잠에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잃어버린 남방
텐트안에서 본 장터목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여덟시에 출발 하였다.
연하봉, 촛대봉을 넘어 세석평전에 도착하니 열시가 되었다. 세석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물을 만들어 내는지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고 있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를 감고, 설겆이에 빨래를 하는 등...
고사목
이대로 나가다가는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쓰레기장으로 변하여 악취만 진동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만 쓰라렸다.

그 곳에서 정동해라고 하는 사람과 동행하게 돼었는데, 그는 부산 출신이며 그 곳에서 학교에 다닌다.
중봉에서 본 천왕봉
칠선봉을 넘어 선비샘에 이르기 전에 새로 장만한 남방셔츠를 잃어 버린것을 알았다. 그에게 배낭을 맡겨 놓고, 도중에 쉬었던 자리까지 뛰어가며 마주오는 이들에게 물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단숨에 세석까지 내달았으나 허사였다. 세석에서 물을 들이킨뒤 기다리는 그 친구를 생각하여 다시 뛰어 왔다.
남방에 있던 지갑, 신분증, 현금을 모두 잃어 버렸다. 그는 함께 걱정해 주었다. 나는 오히려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감사를 했다. 이 분실 사건으로 다리는 풀리고 체력은 소모되고, 시간은 약 두시간을 낭비했다.

천왕봉
선비샘에서 그가 준비한 라면으로 중식을 취하고, 뱀사골로 향했다. 서울 갈 차비 때문에 이맘때 쯤 만날 수 있는 재식이를 찾아 보려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주오는 사람들의 얼굴만 살피며 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연화천 산장에 이르니 오후 다섯시, 마침 그가 아는 후배를 만났다. 하지만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와 함께 후배의 저녁 식사를 염치불구하고 함께 먹었다. 덕분에 시간이 단축되어 뱀사골 산장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이 곳도 시끄럽고 번잡하기는 장터목이나 진일배 하였다.


고마운 사람들
산의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오늘로서 계획 했던 모든 산행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아침 이었다.
얼마를 내려가자 발바닥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그도 절뚝 거리며 함께 하산을 했다. 계곡에서 스프로 점심을 때우고 매표소에 이르니 오후 두시 였다.
그 옷만 안 잃어 버렸어도, 아니 지갑만 다른 곳에 보관 했어도, 그와 술이라도 한잔하며 회포를 풀 수가 있었을 텐데, 그대로 헤어진 것이 아쉽기만 했다.

고사목
대원사 가는길

남원 고속 터미널에서 배낭을 맨 학생처럼 보이는 한쌍의 남녀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부탁을 하였다. 선뜻 오천원을 꿀 수가 있었다. 덕분에 세시 반차를 운좋게 탈 수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믿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산사람들이 가는 산이기에 나도 그렇게 산을 찾는 것 같다.
(산행일지)

-허리 쌕을 찾아 주신 분, 함께 산행한 정동해씨, 터미널에서 도움을 준 이기창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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