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신년회

신년산행(89.1)
 
89년 새해를 맞이하며 지리산에서 신년회를 홀로 가졌다. 장거리 겨울 산행을 위해 장비를 틈틈이 마련해 두었었다.
"뎅그렁, 뎅그렁~" 기차가 서대전을 지날 무렵,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귀성객들은 시계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전주를 지나자 기차는 텅텅 비어 버렸다. 새벽 5시 35분 기차는 진주역 종점에 도착하였다.
찬 공기를 가르며 진주 터미널로 향하였다. 진주 남강을 건너며 촉석루를 바라보니 불빛만 반짝 거린다. 터미널에서 우동으로 허기를 채우고 버스에 오르니, 예상보다는 사람들이 많다. 중산리에 도착하니 7시 50분, 잠시후 매표소에 이르러 배낭을 꾸린 후 출발하였다.

남쪽 계곡이라 눈이 많이 녹았다. 그동안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았기에 눈이 많이 쌓여 있지를 않았다.
11시경 법계사에 도착하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들이 천왕봉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나도 새로 장만한 큰 배낭을 지고 시나브로 정상으로 향하였다. 두시간 후에 천왕봉에 올랐다.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 항상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다. 줄을 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산을 사랑하고 항상 가까이 하겠노라고 맹세하고, 발길을 서쪽으로 돌려 제석봉을 향하여 능선을 탔다.
오가는 사람들은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주고 받으며, 또 한해를 밝게 시작한다.
한시간 후 통천문을 지나 제석봉에 이르렀다. 설화는 만발하여 온누리가 하얗게 빛나고 하늘은 새파란 빛으로 물이 들었다. 바로 설국(雪國)이었다. 잠시후 장터목 산장을 지나쳤으나, 식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세석까지 계속 행군하기로 했다. 천왕봉을 출발한지 세시간 후인 오후 네시경 촛대봉에 도착했다. 어린 꼬마도 하나 다른 무리들 틈에 끼어 왔었다.
오후에 통증이 서서이 오더니 약간 심해지기 시작했다. 새로 산 등산화를 며칠 신어보고 길을 들였어야 하는데, 바로 신고 왔더니 발에 무리가 간다.
세석은 언제와도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여름에는 물이 많아서 좋은데, 겨울에도 식수를 준비할 수가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인지 야영하는 산꾼들이 꽤 많다. 눈을 치운 후 텐트를 설치하는데 땅이 얼어서 팩이 잘 박히지 않는다. 벌써 해는 기울고 손이 얼어간다.
옆 텐트에서 자꾸 권하여 밥을 한술 얻어먹고 짐을 풀었다. 바로 옆에 조금 늦게 도착하여 혼자 텐트를 설치하기에 함께 도와 주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산상의 눈밭에서 새해 첫 밤을 지내고 추위에 눈을 뜨니 새벽 세시경이었다. 커피를 한잔하고 아침을 떡라면에 밥을 말아서 먹고나니 다섯시였다. 여름같으면 짐을 꾸려 출발 했겠지만, 추위에 게을러진것 같다.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니 여기저기서 기상하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홉시가 다되어서야 해를 등지고 서쪽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설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새롭게 나타나고, 두시간을 걷자 선비샘이 나타났다. 식수 및 야영은 가능할 정도였다. 계속하여 능선을 따라 봉우리들을 넘으니 벽소령에 이르렀다. 쌓인 새하얀 눈으로 세수를 하고 준비한 행동식으로 쉴때마다 배를 채웠다.
연하천 산장에서 식수를 준비하여 수통에 가득 채운 후,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려 옴직한 급경사를 눈을 헤집으며 올라갔다. 어제 보다는 인파가 많이 줄었고, 오전의 등산객들 보다 한가한 행군이 되었다. 잠시 쉬며 허기를 채우고 있는데 낡디 낡은 배낭을 맨 중년의 아저씨 한분이 지나가시기에 인사를 나누고, 혼자 가시냐고 물었더니 뒤에 가족이 있다고 하신다. 먼저 가시게 하고 잠시후 출발하려니 맞은 편에서 젊은이들이 몇몇 지나간다.

 

총각샘에 도착하여 그 한여름에 시원했던 물 맛을 보기위해 배낭을 내려놓고 가보니 바짝 말라 한방울도 구경할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세식구가 산행을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앞장서서 발길을 재촉했다. 갈수록 발의 통증은 심해지고 쉬어가는 횟수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토끼봉에서 500원하는 칡차를 마셨는데 천하일미였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고, 바람도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운무가 능선과 골짜기를 넘나든다. 화개재에서 갈림길의 기로에 섰다. 오후 4시 30분경, 계속 행군하려니 임걸령까지 가려면 해가 지겠고, 날씨가 나빠진데다 설상가상으로 발의 통증도 심하여 뱀사골 산장으로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우선 식수를 준비 해놓고 텐트를 설치했다. 해가 질 무렵 어떤 50대 아저씨 한분이 동침을 원하시기에 짐을 가져오라 했다. 그 부산 아저씨는 내 장비를 모두 한쪽으로 치우게 하더니 자신의 장비로만 식사를 준비했다. 산행 경험이 오랜 것 같아 보였다. 생강차를 한잔씩 하고, 능숙한 솜씨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신다. 나는 옆에서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부산의 유씨라고 하면, 지리산의 산장 주인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 하시며, 동료들과 덕유 산행을 마치고 홀로 지리 산행을 왔다고 하신다.
좁은 텐트안에서 둘이 자려니 장비도 많아 약간 좁게 느껴졌지만, 어젯밤 보다는 춥지 않았다. 밤새 바람이 불고 텐트를 흔들어 댓지만, 우리는 단잠을 잤다.

아침 식사후 9시 40분경 출발하였다. 화개재에서 인사를 나누고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과 운무 때문에 나무가지마다 설화가 만발하였다.
노루목에서 당귀차를 사 마시고 반야봉에 이르니, 어제 낡은 배낭을 지고 가시던 중년 아저씨께서 부인과 함께 반야봉을 들러 내려오고 계셨다. 두분은 그곳에서 바로 계곡을 타고 피아골로 향했고, 나는 임걸령으로 향해 나아갔다. 설편들이 바람을 타고 날라와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임걸령 삼거리에서 다시 기로에 섰다. 화엄사와 연곡사 까지의 거리는 13km와 12km정도로 약 1km의 차이 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발의 통증도 오고, 초행길인 피아골도 보고 싶고 하여 연곡사를 향해 남쪽 능선을 타니, 바람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따스한 햇볕만 내려 쬔다.
양지쪽에는 눈이 녹아 땅이 질펀하여 등산화가 진흙 투성이에 급경사라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피아골 산장에 이르니 오후 1시경, 몇몇 팀을 앞지르고 서둘러 하산하는데 드디어 고통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절룩거리며 피아골 종점에 3시경 도착했다. 연곡사 공용 정류장에 3시 30분차가 있다기에 계속 내려 갔지만 코 앞에서 버스가 출발하여 놓치고 말았다. 발만 성했어도 놓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다음차를 기다렸다.
오후 6시경 구례구 역에 도착하니 18:22발 통일호가 있기에 입석이려니 하고 표를 청하니 특실표를 내밀며 권하기에 거금 팔천원을 주고 좌석을 잡고 올라왔다.
준비해놨던 보해 소주를 한잔하고 승강구에 가보니 세면대에는 아주머니와 백일도 못 된 아기가 고생스럽게 앉아있고 승강구에는 학생들 세명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잔씩 나누며 빈병을 붙잡고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좌석을 아주머니와 아기에게 양보하고, 남은 술병을 들고 학생들과 합세하여 함께 노래하며,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옛날을 회상했다.

(산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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