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들
천마산(99.12) - 박윤정

 

99년 12월 19일
'21세기가 간절히 원하는 사람 모두 모여라'하니 유상이형, 재열이형, 승규형, 동철이형, 수진언니, 나 이렇게 모두 6명이 저녁 8시 청량리 롯데이리아 앞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일행은 오붓하게 장비점에 들러 휘발유를 사고, 제과점에서 케이크와 빵을 구입한 후 오남리행 202번 좌석 버스를 탔다.
1년여 만에 참여하는 한결 팀산행이라 나는 마냥 즐겁고 설레인다. 버스안에서 형들과 언니들의 안부를 물어 보고 내일 산행 일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오남리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9시 20분이다.

버스에서 내려 가까운 슈퍼에서 물과 술, 그리고 아침 국거리를 장만하고 오남리 근처에 사는 기호형과 합류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시간을 걸었다. 수려한 주변 경관과 서울과의 교통편이 좋아서 그런지 도로를 따라 이쁜 전원 주택들과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 집들을 지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개울옆에 외딴곳을 야영지로 정했다.
야영지에 도착하자마자 형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땅을 고르고 텐트 2동을 친 후 나무가지들을 주어모아 모닥불을 피워 찬바람에 언 몸을 녹였다. 몸을 녹인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생우동을 끓였다. 하지만, 유상이형이 지나가다 잘못하여 다끓인 생우동을 맛도 못보고 땅에게 한꺼번에 상납하였다. 우리는 아쉬워하며, 다시 남은 생우동을 끓이고 시에라컵에 소주를 가득 채워 돌리기 시작하고 옆에서 동철이형은 열심히 삼겹살을 굽는다. 나는 눈치를 보며 얼어버린 맥주를 홀짝러렸다. 오늘이 재열이형 생일이라 청량리에서 산 케이크와 미리 준비한 멋있는 폭죽으로 재열이형의 귀빠진 날을 축하했다. 승규형은 자기 생일때는 케이크 구경도 못했는데 재열이형의 생일때는 어제, 오늘 두번씩이나 케잌을 받는다며 투덜거린다. 재열이형은 승규형의 그런 말에는 신경도 안쓰고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마냥 좋아한다.

술기운이 조금씩 돌기 시작하자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재열이형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승규형의 '희나리'를 누르고 분위기를 압도한다. 모두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따라 부른다. 노래가사가 너무 길어 가사를 다 못외운 재열이형이 끝부분에서 판이 계속 튀면서 헤메다가 맨끝부분인 '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라는 노랫말이 제일 좋다며 그 부분을 크게 부르며 끝을 맺었다. 그 노래가 끝을 맺자 질 수 없는 승규형의 빨간딱지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엘레나~'라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는데, 형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따라부른다. 승규형에게 내가 노래 제목을 물어 보았으나 제목을 알려면 군대 갔다 오라고 하며, 군대갔다 온 사람만이 알 수 있다며 그 빨간딱지 노래들을 메들리로 몇 곡 더 부른다.
재열이형이 그런 승규형의 큰 눈을 보며 자기의 작은 눈과 비교하며 '큰 눈은 함박눈이고, 작은 눈은 싸리눈'이란다. 모두들 명언이라며 박수를 친다. 재열이형도 자기말에 자기가 감동했는지 '내가 술 취하면 이런 명언이 나온다.'고 하며 흐뭇해 한다.

재열이형은 술기운을 빌어 한창 잘 나갔던 전성기때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이쁜 하숙집 주인 딸을 못잊어하며 '내가 그때 장가만 갔으면 애가 초등 학생이었을 텐데...'하며 아쉬워한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찬송가가 흘러나온다.
승규형은 피곤한지 빨강딱지 노래를 몇 곡 부르고 꿈나라로 가고, 남은 우리는 계속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모닥불', '불씨'등의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눈다. 동철이형이 굽는 삼겹살과 너비아니구이가 너무 잘 팔려 동철이형은 술마시랴, 고기 구우랴 계속 바쁘고, 옆에서 유상이형은 너비아니구이 빨리 안준다고 재촉하고, 재열이형은 "나는 고기의 '고'자도 못 봤다"며 안주가 재열이형까지 안온다고 투덜거린다. 우리는 그런 모습이 우스워 깔깔거리고 웃는다.
맥주가 얼 정도의 영하의 날씨에 우리는 너무도 따끈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운다. 기호형과 수진이 언니, 나는 새벽 2시 30분 경에, 유상이형과 재열이형, 동철이형은 이야기를 더 하다 새벽 4시경에 잠이 들었다.

앞줄-박기호,박윤정
뒷줄-한수진,김유상,신동철,오재열,한승규

20일
내가 너무 추워 잠을 잘 못 이루고 계속 발 시리다고 투덜거리자 옆에서 자던 수진이 언니가 텐트 슈즈를 벗어 준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도 나는 너무 추워 계속 잠을 설치다 오전 8시경 일어나 침낭을 정리하고 밖에 나가보니 유상이형과 동철이형은 비박하고 재열이형은 텐트에 반쯤 걸친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일찍 일어난 승규형이 식사 준비를 하고 기호형은 모닥불을 열심히 피우고 있다
아침으로 순두부 김치찌게와 밥을 했는데 너무 잘 되었다. 누가 '정욱이형 없으니까 모두 잘 된다.'고 하며 정욱이형이 안 오길 잘했다고 좋아한다. 모두들 껄껄거리며 웃는다.
우리는 모닥불가로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닥불 연기와 잿가루가 유상이형이 움직이는 곳으로만 날린다. 그러자 유상이형 옆으로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고 피한다. 한순간에 유상이형이 왕따가 돼 버렸다. 우리는 또 한바탕 웃은 후 텐트와 배낭 정리를 해서 10시 30분경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날씨가 엄청 추워 설악산보다 눈이 더 많이 쌓인 것 같다. 우리는 가끔씩 쉬어가며 물도 마시고 거름(?)도 주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있게 올랐다. 모두들 이렇게 눈이 내렸는지 모르고 아이젠을 아무도 준비하지 않아 엉덩방아를 여러번 찍기도 하였다.
12시 40분경 704m의 돌핀샘에 도착하여 샘터에서 목을 축인 후 다시 정상을 향했다. 돌핀샘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을 눈꽃들이 너무 예쁘게 나무위에 덮여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승규형을 졸라 동봉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가파른 암릉을 올라 1시 15분경 812.3m의 천마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인어 공주가 놀다간 것처럼 온통 은빛 비늘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눈도 아닌 것이 굵은 입자의 생선 비늘같은 얼음 알갱이들이 얼어있어 무척 아름다웠다. 동철이형이 정상에서 주변 산들을 둘러보며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백운대, 인수봉, 도봉산, 불암산, 저쪽이 용문산 저쪽이 축령산이라고 자세히 설명해 준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이 탁트여 모든 산이 다 보여 천마산이 딱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헉헉대는 숨을 고르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멋있는 폼들을 재며 사진 두 장을 찍었다. 그리고 따뜻한 양지로 가서 점심으로 바게트를 바이오거트에 찍어 먹으려 하는데 바이오거트가 딸기 샤베트(?)가 되어 있었다. 재열이형이 바이오거트를 먹으려고 스푼을 찾자 마침 내게 스푼 하나가 있어 이건 내것이니까 내 침을 발라야 된다며 내가 그 스푼으로 바이오거트를 한 스푼 떠먹고 주니까 조금 있다 유상이형이 다시 스푼을 찾는다. 그 사이 바이오거트를 다 먹은 재열이형이 자기 침을 가득 발라 유상이형에게 건네자 모두 웃음 바다가 된다. 유상이형이 거절하자 결국 재열이형은 뜨거운 물에 스푼을 헹구어 다시 유상이형에게 건넨다. 그렇게 간단하게 즐거운 점심 식사를 끝맺고 따뜻한 물 한잔씩을 한다. 동철이형은 소화가 안돼 점심도 못 먹고 기호형이 가져온 소화제만 먹고 2시 20분경 하산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임꺽정의 활동 무대였던 가파른 꺽정바위를 지나 헬기장을 거쳐 천마의 집으로 내려왔다. 나는 이제 몸이 둔해져서 그곳을 내려오면서 가파른 바위 지대에 설치된 줄을 잡고 헤메면서 내려왔다. 고맙게도 뒤에서 형들이 많이 도와주어 아무 사고없이 잘 내려왔다.
천마의 집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있어 하산하기는 편했으나 지루하여 중간에 가로질러 내려오다 기호형은 계속 미끄럼 타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렇게 힘겹게 내려온 우리는 3시 45분경 상명대 생활관까지 내려와 그 근처의 은행나무 아래서 간단하게 라면과 남은 고기를 구워먹고 4시 30분경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걸어서 호평동까지 나와 5시경 청량리가는 165-2번 시내버스를 타고 오다가 기호형은 금곡에서 내리고 모두 청량리로 나왔다.
청량리에 도착하자 6시가 조금 지났는데 승규형이 밤차타고 마산으로 갈 나를 생각해서 저녁을 먹고 가자며 식당으로 들어간다. 모두들 배가 불렀으나 마다하지 않고 같이 감자탕을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해서 천마산의 시린 눈과 한결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한 천마산 산행을 마감했다.

끝으로 걱정을 많이 해준 원기형, 침낭 빌려 준 상현이형, 터미널까지 배웅해 준 유상이형과 같이 산행한 모든 형들과 언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번 산행을 통해 다시 한번 형들과 언니들의 후배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1세기가 간절히 원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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